촛불 혁명.<br /><br />지난해 '국정농단' 사태에 분노한 국민들은 하나가 돼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었고, 결국 '정권 교체'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.<br /><br />시민들이 힘을 모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습니다.<br /><br />30년 전, 유독 뜨거웠던 그 여름처럼 말입니다.<br /><br />1987년 6월 10일.<br /><br />호헌철폐, 독재타도라는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.<br /><br />학생들은 물론이고 이른바 넥타이 부대로 불린 직장인들까지 쏟아져 나온 거리는 최루탄 연기로 뿌옇게 물들었습니다.<br /><br />택시기사들은 경적을 울리며 시위에 동참했습니다.<br /><br />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분수령이 된 6월 민주항쟁을, 당시 주역이었던 이인영 민주당 의원은 이렇게 기억합니다.<br /><br />[이인영 / 민주당 의원,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 : 6월 항쟁은 1987년 판 촛불 혁명이었다….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, 이런 측면에서 본질은 하나라고 봅니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 항쟁은 보다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투쟁의 결과인데요.]<br /><br />6월 민주화 항쟁의 불씨가 된 두 사건이 있습니다.<br /><br />당시 경찰이 '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'고 해명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입니다.<br /><br />민주주의를 꿈꾸던 스물 한 살의 청년 박종철.<br /><br />1987년 1월 민주화 운동을 하다 경찰에 연행돼,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조사받던 도중 사망합니다.<br /><br />당시 경찰은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는 데에 급급했고 국민은 분노했습니다.<br /><br />그리고, 1987년 6월 9일.<br /><br />경찰이 쏜 최루탄에 쓰러지는 또 한 명의 청년 이한열.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생이던 이한열 군은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은 후 쓰러졌습니다.<br /><br />당시 쓰러진 이 군을 같은 학교 학생이 부축하고 있는 모습입니다.<br /><br />학교 앞 시위에 참가한 이한열 군이 경찰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진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합니다.<br /><br />이 사건으로 6월 항쟁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.<br /><br />최루탄에 맞고 한 달 뒤 결국 사망한 이한열 열사.<br /><br />이 열사의 어머니는 아들이 바라던 대한민국은 이제 시작됐다고 언급하면서, 많은 이들이 이한열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.<br /><br />[배은심 / 故 이한열 열사 어머니 : 많은 사람들이 6.10 항쟁이 미완이라고들 많이 하셨습니다. 이제 30년이 됐으니까 좀 완성이 되지 않겠는가, 저는 그런 걸 바라고 있습니다.많은 사람들이 이한열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줬... (중략)<br /><br />▶ 기사 원문 : http://www.ytn.co.kr/_ln/0103_201706091801378853<br />▶ 제보 안내 : http://goo.gl/gEvsAL, 모바일앱, 8585@ytn.co.kr, #2424<br /><br />▣ YTN 유튜브 채널 구독 : http://goo.gl/Ytb5SZ<br /><br />[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/ Korea News Channel YTN ]